대동군 치안대장 노릇을 하면서 포로 잡았던 인민군들이 득실대는 신양리 형무소에서 갖은 구타와 위협을 받으며 생활을 했던 것.
중공군의 개입으로 UN군이 후퇴를 하면서 신양리 형무소에 있던 포로들은 남쪽으로 이송되어는데, 동양 방직 공장을 거쳐, 인천 수용소, 부산 가야 수용소를 거쳐 거제도 포로 수용소를 향하였다.
수용소라고 하는 것이 논바닥에 텐트를 치고 가마니를 깔고 그 위에 포로한 사람이 누우면 그다음 사람은 반대 방향으로 눕혀서 발냄새가 코를 찌르고 빈대와 벼룩에게 시달리는 가운데 한 수용소당 5천 명씩 수용하였던 것.
조희성 님은 3년 내내 수용소 내 화재 담당 책임자로 봉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