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혐의로 구속

검찰에 자진 출두한 사람을 구속 수사함.

검찰 특수부가 탁명환이 운영하는 현대 종교라는 잡지책에 쓴 악의적인 보도만 믿고 시체도 없고 목격자도 없고 증거도 없는 살인혐의를 구성하였고, 도주 우려도 없이 자진 출두한 사람을 구속 수사했던 것.

구속을 해서 정해진 기간 안에 혐의를 찾을 수 없으면 석방하는 것이 적법한 절차이지만, 검찰은 수차례에 걸쳐서 다른 혐의로 영장을 변경하여(별건 수사) 구속을 유지하였던 것. (선고 전 구금일 수 230일)

구속 이후 조희성 총재의 가족, 주변 인물들은 물론, 신도들 주변까지 샅샅이 수사를 했고, 봉제 공장 세무조사를 포함하여 문자 그대로 탈탈 털었던 것.

봉제 공장이란, 당시 전국 각지에서 무작정 상경한 사람들이 많았는데, 잠잘 곳도 없고 밥 사 먹을 돈도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던 것. 처음엔 제단 지하 2층은 여자들이, 지하 1층은 남자들이 잠을 잘 수 있도록 했던 것. 승리제단의 예배 공간은 지하 2개 층으로 지하 1층에 주단상이 있고, 중간층에 중간단상이 있습니다. 교회 처럼 긴 의자에 앉아서 예배 보는 방식이 아니고, 카펫 바닥에 방석을 깔고 앉아서 예배 보는 방식이라 그냥 탁 트인 넓은 공간임)

이후 그들의 생계를 위하여 200여 명 규모의 봉제 공장을 차리게 되었고, 그 수입으로 주변에 방을 얻고 독립된 생활을 하면서 고향의 부모님께 송금도 하고, 제단에 헌금도 하면서 운영되고 있었던 상황.

탁명환은 승리제단과 이 봉제 공장 관련하여 승리제단과 조희성 총재를 없애버릴 목표를 세우고 상상력 속에서 그려진 영생교라는 단체를 집단성교, 감금 및 폐쇄 생활, 노동력 착취, 임금 강탈, 탈퇴자 처단조, 집단 살인 같은 추잡한 왜곡과 모함 모략 선동하는 기사로 자신의 잡지책을 도배하다시피 하였던 것.

1993년 기독교 장로였던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면서, 청와대 경내에서 불상들을 철거하며 사이비종교 척결을 외치자, 탁명환은 승리제단 관련 진정과 청원을 거듭하였고, 마침, 매독 걸린 교회 목사의 부인이 영부인과 이화여대 동기동창으로 잘 알고 지내던 사이였기에, 그 인맥을 통하여 결국 서울지검 특수부가 본격 수사에 착수하게 되었던 것.

언론 또한 탁 씨의 주장만 믿고 과거 종교단체 관련 사건·사고들을 열거하면서 사이비 종교 프레임으로 진실을 덮으며 인류를 구현할 참 진리가 전파되지 못하도록 사회적 매장을 앞서서 했던 것.

탁명환이 이토록 승리제단과 조희성 총재를 무고하고 적대시하기 시작한 이유는 자신이 요구한 돈 3억을 거부당하며 문전박대당하였기 때문임. 탁 씨는 여러 종교 단체를 취재하며 현대 종교라는 잡지를 발행하는 언론인이었는데, 이단/사이비 판단과 기사 방향을 거래하며 잡지책 강매와 금품을 요구하였던 것. 대성교회 목사에게 이 같은 짓을 끊임없이 하다가 결국 그 목사의 운전수에 의해 운명을 달리하였던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