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

하나님이 약속하신 인류 구원의 역사(役事)는 6천 년의 기간에 걸친 일입니다.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해와가 남자와 여자로 변한지 2천 년 후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역사(役事)를 했고, 이후 2천 년 후에 예수가 나타났고, 이후 2천 년 후에 하나님의 약속하신 6천 년이 되어 참 구세주가 출현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100세에 얻은 아들을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제물로 바치려 했던 ‘믿음의 조상’이지만, 6천 년만에 출현한 참 구세주는 자기 자신을 제물로 바친 ‘이기신 하나님’입니다. 이 분 보다 더 하나님께 충실한 분은 성경 상에도 없습니다.

참 구세주는 문자 그대로 대자대비(大慈大悲)하셔서 누구를 봐도 하나님으로 보시고, 무엇을 봐도 부처님으로 보시고, 잘못 하는 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 분이십니다. 따라서 ‘원수의 사람’, ‘적의 사람’이 없는 분이십니다. 아무리 모함과 모략을 하고 억울한 기소와 판결을 한 사람이 온다 하더라도, 다 용서해 주실 그런 성품의 존재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원수와 적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마귀’입니다. 만물 속에는 하나님과 마귀가 공존하고 있지만, 의인의 눈에는 마귀를 죽이고 하나님만 보시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6천 년 세월이 흐르면서 사상, 개념, 이해, 언어가 죄인의 입장에서 마귀의 시각에서 건축된 영적인 구조물입니다. 이 죄악 세상에서 종교도 사업체로써의 모습이 점점 선명해지고 있습니다. 다른 종교에 대해 비판하면 “왜 남의 종교를 헐뜯느냐” “서로를 인정하고 싸우지 말라.”하는 말을 하는 것은 이 사회가 종교를 서로 나눠 먹기하는 시장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종교는 죄인들이 아끼는 장식품이 아닙니다.

참 구세주의 참 종교는 “이 세상에는 종교가 없었다”라는 말씀으로 세상의 모든 종교를 비판합니다. 이 말씀에는 적당히 안정적으로 나 먹을 만큼 먹겠다는 기성종교식 판단 기준과는 비교할 수 없는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또한 이 말씀은 “새로운 말씀이 여기에 있다”라는 선포입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6천 년에 걸쳐 세 차게 흐르고 있는 사망의 조류가 있습니다. 그 조류를 편안하게, 적당히. 조상들이 그렇게 살았고 주변 사람들도 그렇게 살고 있는데, 그들과 같이 그 조류를 타고 있으면 결국 죽음으로 향해 흘러가는 것입니다. 증명, 재증명, 재재증명… 이것은 정해진 이치입니다.

그러나, 그 세찬 사망의 조류를 거슬러 올라가는 물고기가 있습니다. 그런 물고기가 현실에 엄연히 있습니다. 인류 구원의 역사(役事)는 사망의 조류를 거슬러 올라 가는 물고기와 같은 역사이지, 죄악세상에서 안정적으로 적당히 사망의 조류에 몸을 맡긴 기성 종교와 같은 그런 사이비종교 역사(役事)가 아닌 것입니다.

인류구원의 역사는 이 사망의 조류에 너무나 오랫 동안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말씀을 전해줘서 그들을 잠에서 깨우고 그들로 하여금 그 조류에 떠내려 가는 걸 허용하지 않고 올바른 방향을 향하게 노를 젓게끔 해야하는 겁니다. 인류는 한몸이라 우리는 공동 운명체이기 때문에 “저 사람이 구원을 받아야, 나도 그 덕에 구원을 받는다”라는 인식에서 이 새로운 말씀을 널리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때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먼저 내가 주님의 말씀을 잘 알아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알고 있던 개념, 내가 취해왔던 신앙인으로서의 입장, 내가 사용하던 용어의 포괄적인 실천 등을 그대로 유지한채 그 안에 새로운 말씀을 담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헌 부대’란

대표적으로 기성 사이비종교식 구원에 대한 이해입니다. 내가 신을 믿고, 기회가 된다면 신을 믿는 사람들이 모인 곳에 참석하여, 찬양하고, 신의 말씀을 따라 살면, 신의 가호를 받아 내가 구원을 받는다는 개념은, 신이 무엇인지 어디에 있는지, 죄가 무엇인지 어디에 있는지 그 기초를 알지 못하는 엉터리 신학에서 비롯한 오해입니다. 물론 죄악 세상의 대다수 사람들에게 상식처럼 통용되고 인정받고 있지만, 사망의 조류 속에서, 알지 못하는 신을 가르치고 배우는 엉터리 신학의 산물인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새 술’이란

참 구세주로 부터 나오는 ‘새로운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죄악의 세상을 이기는 말씀이며, 사망의 조류를 거슬러 오르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의 핵심은 ‘나’ 라는 것이 마귀의 본체라는 것이고 하나님은 ‘나’ 라는 마귀 영옥(靈獄)에 갇혀 있는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 마귀 영옥을 부수고 나와야 되는데, 각자 안에 있는 하나님이 강해져서 스스로 그 영옥을 부수고 나와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때, 구세주는 길을 안내하고 그 길을 갈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산파와 같은 역할을 하다가 마지막 결정적인 순간에 그 아리랑 고개를 넘어 갈 수 있도록 해 주십니다.

성령으로 거듭나는 길을 각자가 노력해서 가야하는데 구세주로 부터 은혜를 끌어 당겨서 가는 겁니다. 이 길은 은혜로 가는 길이고, 그 은혜를 끌어 당기는 일 중에서 늘 강조하시는 것이 바로 전도입니다.

전도를 할 때에는 하나님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말하기 때문에, 초초로 하나님만 생각할 수 있는 최고의 도구가 바로 전도인 것입니다. 이 분을 전도해서 데려와야겠다는 생각은 ‘내 생각’ = ‘전도하는 음란죄’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전도를 해주는 것인데, 내 역할은 주님으로 부터 은혜를 끌어 당겨서 그 은혜를 베풀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은혜로 말미암아 전도 받는 사람을 주님이 끌어 잡아 오는 것입니다. 결국, 전도를 통하여 내 안에 하나님의 영이 자라서 마침내 마귀 영옥을 부수고 나올 수 있을 정도로 강한 이기신 하나님이 되는 겁니다.

주님이 그 분을 제단으로 이끌어 주시면 전도한 사람은 그걸로 소임을 마치는 것이 아니고, 그분을 영적인 자식으로 키워야 할 영적인 엄마가 되는 겁니다. 영적 자식이 이 길을 잘 갈 수 있도록, 은혜를 끌어 당겨 영적인 젖을 연결 시켜 줘야 되고, 이후 숫가락 잡는 법, 걸어가는 법, 옷 입는 법, 등 갖가지 것을 다 챙겨주고, 오염을 받아 오면 그걸 빨아서 깨끗하게 씻어 주는 영적 엄마로써의 역할. 바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해 주신 그 역할 말입니다.

‘새 부대’란

새 부대가 처음부터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헌 부대를 내다 버리고 그 자리를 청소해 비우는 것이 바로 ‘새 부대’를 들이는 것입니다.

‘새로운 말씀’을 고정 관념 속에서 이해하는 것이 ‘헌 부대’에 담는 것인 걸 앞에서 말했는데, 예를 하나 든다면, ‘영생을 한다.’

‘영생을 한다’는 말씀을 ‘헌 부대’에 담으면, “인생이 힘들고 괴로운데 영생을 한다고?”, “지구 인구가 지금도 많은데, 영생을 하면 식량이 부족해진다.” “한번 태어나서 한번 죽는 것은 정한 이치인데 영생을 한다고?” 이런 쪽으로 생각이 흘러가게 되는데, 자신이 이해 못한 것은 생각을 하지 않고 이와같이 오해를 하고, 심하면 다니면서 비방하는 일로 이어지는 겁니다.

삶이 행복하지 않은데 어떻게 영생을 하겠으며, 사람(죄인)은 영생할 수 없어요. 그러나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의 후손으로써 영생할 수 있는 잠재적 요소, 하나님이 있는데 현재 마귀 영옥에 갇혀 있지만 그 영옥을 부수고 나오면, 죄인(사람)이 의인(하나님)이 되어 하나님의 몸으로 변화하여 영생을 하는 겁니다.

따라서 죄악 세상 6천 년을 흘러 오면서 굳어진 그 ‘헌 부대’. 그 고정 관념, 낡은 이해, 비 진리로 형성된 내 주관을 내다 버리고 청소하는 것이 ‘새 부대’를 들이는 것입니다.

그 고정 관념의 뿌리가 바로 이 죄악 세상에서 널리 인정 받고 있는 기성 종교와 학문인 것입니다.

따라서 마귀가 쳐놓은 양식장의 그물과 같은 고정관념의 항아리를 진리의 철장으로 쳐서 부수는 것이, 그 마귀 양식장의 그물을 찢는 것입니다. 그래서 물고기들로 하여금 사망의 조류에 역류해 참 구세주를 향해 올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역사가 2천년된 종교, 믿는 신도 수가 수십 억 되고 세상에서 유명한 종교라고 하지만, “당신이 말하는 신이 대체 어디에 있소?”, “죗값으로 죽는다는데 대체 죄가 뭐요?” 이렇게 시작하는 질문에 2~3단계 깊이서 부터 버틸 수 있는 종교가 없는 겁니다. 사이비종교이기 때문입니다. 참 구세주가 나와서 진리의 철장으로 치니, 비 진리로 형성된 그 유명한 종교들이 전부 질그릇처럼 깨지는 것입니다.

지금은 영생의 학문과 종교로부터 새로운 ‘영생의 고정관념’이 형성되지 않는 시기이기 때문에, 전도를 받는 사람은 내 주관을 잠시 뒤로 하고, 새로운 시각에서 새 말씀을 깊이 이해하려는 자세가 필요하고, 전도를 하는 사람은 반발하는 사람들마져 녹일 수 있는 강하고 뜨거운 은혜를 끌어 당겨야 합니다.

그러므로 전도란 그 목적이 사람을 데려온다라기 보다, 은혜를 잡아 당기는데 있습니다. 은혜가 충만하면 사람은 오라고 말하지 않아도 제발로 따라오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전도해서 데려올 사람과 전도하면 안 될 사람

1) 건강한 사람들을 전도하는데, 매일예배를 볼 수 있는 여건이 안 돼는 사람은 데려오지 마세요.

매일예배를 반드시 보겠다는 심령상태가 되기 전까지는 데려오지 마세요. 은혜를 베풀어 충분히 이해된 상태에서 본인이 오고 싶다고 할 때, 그때 모시고 오세요.

2) 제단에 나오다가 나오지 않는 사람들을 데려오면 안 됩니다.

이미 심판을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접촉도 하면 안 되고, 제단에 데려와서도 안 되고, 제단에 들어가도록 놔둬서도 안됩니다.

3) 제단에 나오고는 있는데 매일예배를 띄엄띄엄 나오는 사람도 더 이상 제단에 발을 들여놓게 해서는 안됩니다.

주의하고 경고하며, 절대로 그런 사람이 이 신성한 제단을 오염시키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됩니다.

4) 제단에 나오다가 안 나오는 사람을 나오게 하자고 거듭 감정에 읍소하는 사람도, 주의와 경고를 하고, 제단에 발을 들여놓게 해서는 안 됩니다.

명령을 어기고 이미 접촉하고 있고, 주님의 사정은 안중에도 없이 그 심판을 받고 내쳐진 사람을 염려하는 것입니다. 똑같은 사람으로 여기고 직책에 상관 없이 제단에 발을 들여놓게 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이 좋고 불쌍하니 살려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 전에, 먼저 불쌍한 주님의 입장을 생각하고, 이런 일을 절대로 주님께 건의해서는 안 됩니다.

5) 밖에서 비방하고 욕하고 떠드는 사람들은 전도해도 됩니다.

연락이 되면, 제단에 조금이라도 나왔던 사람인지 확인해 보세요.

제단에 나온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심판 받은자 명단에 추가해서 다른 성도들이 모르고 다시 접촉하지 않게 하세요.

제단에 나오지 않은 사람이라면, 오해를 풀어드리고 잘못 알고 있는 것을 바로 잡을 수 있도록 알려주세요.

6) 주님과 다른 성도들에게 부담이 될 사람인지, 내가 지금 마귀의 농간에 놀아나고 있는지 분별을 하면서 전도하세요.

제단은 주님 입장에서는 빨래터입니다. 똥덩어리가 담긴 세탁물을 가져와서 어쩌라는 말입니까? 빨래하는 사람의 입장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됩니다. 그 똥물에 주변의 빨래감이 오염되면 안되는 것입니다. 여기는 신도 수를 늘리는 게 목적이 아니라는 주님 말씀을 명심해야 합니다.

또한, 사업할 곳을 찾는 사람인지, 취재를 원하는지, 연구를 원하는지, 신분이나 목적을 속여 의도적으로 개인에게 접근하는 사람들을 분별해야 됩니다.

어떤 이유에서건 제단 나오다가 안 나오는 것은 “성령을 거살”한 원인이 있고 주님의 심판으로 내쳐졌기 때문에 안 나오는 결과가 있는 것이며, 속 맘으로는 “성령은 무슨 개뿔”하면서, 말로는 인정하고 찬양을 하지만, 행동으로는 성령을 이용하거나 성령을 관찰 대상으로 여기고 지 맘대로 “이렇다 저렇다” 가지고 놀려는 마귀가 바로 붉은용 마귀입니다.

행동이 그 혓바닥이 숨기는 진짜 말을 합니다. 따라서, 그 사람의 행동과 결과를 보아 분별할 수 있는 겁니다.

7) 판단하기 곤란한 것은 오래된 고참이나 제단 총무과로 넘기세요.

미륵불께서 가장 바라시는 것은 제자들이 전도하는 일이다. 그와같이 하면, 해가 나오면 안개와 이슬이 없어지는 것과 같이 모든 죄가 멸한다. * 열반경 제6권